2008년 월가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미국에서만 87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습니다. 2007년 5%였던 실업률이 2009년 10월 10%까지 치솟았고, 빈곤층 비율은 2007년 12.5%에서 2010년 15.1%로 상승했습니다. 개인과 기관투자자들이 부채담보부증권(CDO) 같은 신종 금융기법에 현혹돼 과도한 투기에 나선 게 모든 불행의 발단이었습니다.
거품 붕괴에 뒤이은 유동성 위기는 미국 4대 투자은행이었던 리먼브라더스의 파산(2008년 9월)으로 정점에 달했습니다. 업계 5위였던 베어스턴스를 비롯해 숱한 월가 회사들이 사라졌지만 위기를 이겨낸 회사들도 있습니다. 골드만삭스가 대표적입니다.
당시 골드만삭스를 이끈 로이드 블랭크파인 전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국내 출간된 저서 <생존지능(필름 펴냄, 원제 Streetwise: Getting to and Through Goldman Sachs)>에서 그 시기를 이렇게 돌아봤습니다. "위기를 없앨 수 없지만 준비된 사람은 그것을 통과할 수 있다."
금융위기 당시 리먼브라더스는 자본의 30배에 달하는 투기적 레버리지(자기자본 이익률을 높이기 위해 차입금 등 타인의 자본을 지렛대처럼 이용하는 것)에 나섰다가 거품이 꺼지자 속절없이 무너져버렸습니다. 자산을 시가가 아닌 장부 가격으로 계상해 부실을 은폐하려는 꼼수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블랭크파인의 골드만삭스는 달랐습니다. "손실을 즉각적으로 인정하는 정직한 리스크 관리를 통해 포지션을 선제적으로 축소했고 피해를 최소화했다." 1987년 월가 주식시장 폭락과 1994년 채권시장 위기,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1998년 러시아의 채무불이행과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의 파산 등을 지켜보며 "위기는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는 교훈을 새긴 결과였습니다. "모두가 낙관하던 순간, 나는 정반대 방향을 바라봤다. 시장이 끝없이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 대신 위험을 먼저 계산했고, 골드만삭스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막을 세웠다."
그가 이런 조치를 취할 수 있었던 것은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존중한 덕분이었습니다. "지위가 높다고 해서 부하직원들보다 지적 능력까지 뛰어난 것은 아니다. 경험은 더 많을지 몰라도 과연 그들보다 더 똑똑하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블랭크파인은 "진짜 위험은 나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순간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회사의 최종 의사결정권자로서 그가 습관처럼 되뇌던 주문이 몇 가지 있었답니다. "첫째, 선택지가 없으면 고민도 없다. 둘째, 내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셋째, 내가 아니면 누가 하겠는가?" 아랫사람을 관리한다는 것은 하나의 암묵적인 계약을 인식하는 일이랍니다. "공은 부하직원들에게 돌리고 어떤 비난이 쏟아지든 그 책임은 상사인 당신이 짊어지어야 한다는 뜻이다." 블랭크파인은 자신이 골드만삭스에서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윗사람을 관리하는 법이 아니라 아랫사람을 관리하는 법을 점점 더 잘하게 된 것'을 꼽습니다.
그는 최고경영자의 덕목으로 '위기가 언제든 찾아올 수 있음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무엇을 봐야 하는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언제 물러서고 언제 다시 움직여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생존지능'을 꼽습니다. "위기는 피할 수 없지만 위기 앞에서 무너질지 통과할지는 준비된 판단력에 달려 있다. 살아남는 사람은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 위기를 읽고 견디고 끝내 다음 기회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경제사회연구원 이사 이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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