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9월 11일 아침, 미국 뉴욕에서는 특별한 마라톤대회가 열립니다. 수만 명의 참가자가 배터리터널(브루클린과 맨해튼을 연결하는 길이 2,779m의 북미 최장 해저터널) 입구에서 ‘그라운드 제로’(2001년 ‘9·11 테러’로 사라진 트레이드타워 터)까지 5㎞ 구간을 달립니다. ‘9·11’ 당시 순직한 스티븐 실러 소방관을 추모하는 행사입니다.
사고 당일 아침, 실러는 밤샘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던 중 긴급 출동 명령을 받았습니다. 배터리터널에서 통행이 차단되자 27㎏에 이르는 장비를 둘러메고 현장까지 5㎞를 달려갔습니다. 다섯 아이의 아버지였던 그는 가족들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사고 현장 수습에 목숨을 바친 343명의 소방관 가운데 한 명이 됐습니다.
미국 사회는 실러를 비롯한 뉴욕 소방관들의 공직자 정신과 순직에 전율했고, 그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습니다. 사고 이듬해인 2002년부터 ‘9·11 마라톤대회’를 여는 이유입니다. 이 대회에는 미국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이 군장 차림으로 매년 참가합니다. 순직 소방관들의 위국헌신(爲國獻身) 정신을 새기기 위해서입니다.
한국경제신문 9월19일자 기사 <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우리 함께 선행을 합시다 … 살아있는 한 지치지 말고>는 스티븐 실러 소방관의 형 프랭크 실러가 9·11 테러 25주년을 맞아 펴낸 책 <Let Us Do Good(우리 함께 선을 행합시다)>을 소개했습니다.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동생을 잃은 고통을 견디기 힘들었지만, 비영리단체인 ‘배터리터널에서 트레이트타워까지(Tunnel to Towers) 재단’을 설립해 비슷한 아픔을 지닌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다.”
이 재단은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당신들은 혼자가 아니며, 국가와 사회가 당신들의 희생을 절대 잊지 않는다”며 슬픔에 잠긴 그들의 손을 잡아줍니다. ‘9·11 마라톤’을 여는 것도 그 일환입니다.
책에는 공직 수행에 목숨을 바친 스티븐 실러의 선한 행동으로 시작된 놀랍고 아름다운 기적들이 담겨 있습니다. “책을 읽는 모든 사람이 스티븐의 발자취를 함께 따라 걸으며, 가장 어두운 시기에도 우리가 선을 행하기로 선택한다면, 영원히 꺼지지 않는 ‘빛의 유산’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바란다.”
그러면서 “우리가 이 땅에 머무는 시간 동안, 지치지 말고 함께 선을 행하자”고 당부합니다. 그가 책 제목으로도 삼은 이 말은 두 형제의 부모님이 자녀들에게 자주 들려줬던 가톨릭 성인 프란치스코(1181~1226, 작은형제회 설립자)의 말 “우리에게 시간이 있을 때, 함께 선을 행합시다”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 말은 기독교 신약성서 갈라디아서 6장 10절에 기록된 사도 바울의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Therefore, as we have opportunity, let us do good to all people, especially to those who belong to the family of believers.”)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강력한 이 말은 소방관이었던 스티븐 실러에게 ‘삶의 나침반’이 됐고, 그는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주저 없이 재난의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형인 프랭크는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로 책을 마무리합니다. “동생이 남긴 빛이 어떻게 수백만 명의 삶을 바꾸고 있는지 전하며, 깊은 감사와 존경을 바친다.”
-경제사회연구원 이사 이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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